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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영남일보, 민족일보 등의 기자, 사회당 활동 등을 하였다. ’64년 1월경 ‘인민혁명당’ 조직부책,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대구경북지부 대변인으로 활동하였고, ’74년 4월경 ‘인민혁명당재건위’ 교육책으로 지명 수배된 후 ’79년 10월 4일 검거 시까지 5년 5개월 간 수배 생활을 하였다.

’79년 10월 4일 남민전 사건으로 체포·구속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60여일 간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근안 등으로부터 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였다. 서대문구치소 수감 중이던 ’81년 8월경부터 위장병이 급격히 악화되었으나 구치소에서의 치료로는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구치소측은 구치소 내 병사에 입사시켜 소극적인 치료로 일관하다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같은 해 11월 22일 운명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동지는 ’79년 10월 4일 체포 당시 자해를 하여 서울대병원에 20여 일간 입원하였고, 위내시경 검사를 통해 조기위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으나 정권은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위암에 대한 치료도 하지 않았다. 이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40여일 동안 불법구금의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조사과정에서 동지를 비롯한 남민전 관련자들에게 고문 등의 가혹행위가 심하게 있었음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