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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공장에 취업하여 생활하면서도 야간중학교까지 다니며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완구공장에 다니시는 홀어머니와 노동일을 하는 오빠, 여동생 둘인 어려운 집안의 장녀로서 꿋꿋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평소 세심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주위 동료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아온 동지는 나이어린 학생들이 밤이면 공부하고 낮에는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애쓰다 불량이라도 하나 내면 관리자들에게 폭언을 당하는 것을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고 괴로워했던 가슴여린 스물 두 살의 여성노동자였다.

또한 동지는 지역 노동자들의 독서모임인 ‘도서원 광장’에 나가면서 노동자의 의식에 눈을 떴고, 자랑스러운 노동자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러던 동지는 신발업체인 대봉(주)에서 ’91년 11월부터 회사와 어용노조의 협조 속에서 시행되던 ‘30분 일 더하기 운동’과 당시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노동통제강화에 항거하며 공장 옥상에서 투신 운명하였다.

다음은 동지의 팔뚝에 쓴 유서 전문이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땅에 묻지 않고 그대들 가슴속에 묻어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말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