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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79년 서울대학교에 입학 후 동아리인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시작해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민주화와 민중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주민등록증 일제 갱신 시기여서 수배중인 운동권 학생들이 도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도와주려다 이 사실이 보안사에 발각되어 휴가복귀 후 부대근무 중 ’83년 12월 6일 보안사령부로 연행, 이 사건으로 군부대 녹화사업을 받게 되었다.

입대 전 학생시절의 민주화운동과 야학연합회 사건 관련 혐의로 전기고문을 당하면서 5일 동안 취조를 받고난 후 12월 10일에 석방돼 부대에 복귀했고 그 다음날인 12월 11일 새벽 4시 30분경 동지는 부대 내 문서 보관창구 앞 보초서는 자리에서 가슴에 3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보안사의 불법적인 연행, 조사 및 폭행 가혹행위와 죽음이 인과관계가 있어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사망으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