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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할머니는 1990년대 초, 성폭력 피해자가 오히려 수치스러워하던 가부장적인 당시 한국 상황에서도 일본당국의 개입 불인정, 강제성 부인등이 잇따르자 이에 용기 있게 ‘위안부’ 피해를 처음으로 고발함으로써 일본정부의 거짓을 폭로하였고, 이를 통해 반세기동안 침묵하고 있던 한국의 다른 피해자들과 전 세계 피해여성들이 잇따라 공개증언을 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일본 도쿄지법에 배상청구 소송을 내고 일본 국회에서의 기자회견 등 일본정부의 군개입 부인에 대한 항의활동에 적극 나섰다.

1995년 일본정부가 법적 배상이 아닌 '위로금'계획을 발표하고 아시아여성평화국민기금재단을 설립하여 기금지급을 강행하자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며 끝가지 '국민기금'을 거부했다. 천식을 오랫동안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법정으로, 국회로, 전국 각지로 다니면서 일본군 '위안부'범죄의 실상을 알리고, 일본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다 결국 1997년 지병으로 영면했다.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과 활동은 많은 국민들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에 참여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