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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대학 입학하던 해 한국전쟁이 나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동지는 민단에서 일하면서 ’56년에는 재일동포 북송반대운동, ’59년에는 조봉암 석방운동에 앞장섰다. 4·19혁명이 나자 동지는 국내로 들어와 사회대중당 후보로 경북 청송에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일본으로 돌아간 동지는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평화통일론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신문 발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다.

서울로 돌아온 동지는 ’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창간했다. 10월 31일 혁명재판소 상고심은 변호인의 변론도 없이 동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박정희는 12월 21일 동지의 사형을 확인했고 이 날 사형이 집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