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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서울대 언어학과에서 학생회장을 맡아 중심적으로 학생활동을 전개하다 ’86년 노학연대 투쟁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되어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하였다. 출소 이후에도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동지는 ’87년 1월 13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 의해 연행되었다.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추위’ 지도위원으로 수배 받고 있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 동지가 연행된 것이다.

동지는 14일 오전 물고문, 전기고문을 받았고, 11시 20분경 중앙대 용산병원에 옮겨졌는데 의사가 검진했을 당시 이미 숨져 있었다.경찰은 초기 발표에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며 발뺌을 하였으나 부검 결과 전기고문과 물고문에 의한 살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치안본부는 고문담당자를 축소은폐하고 가족의 허락도 없이 벽제화장터에서 시신을 화장해 버리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부영 전민련 상임의장과 천주교 정의평화구현 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에 의해 고문살인의 은폐사실이 밝혀지고 이로인한 범국민적 투쟁의 결과 결국 치안본부는 고문살인의 은폐, 조작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