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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유신 시대 이래 20년 가까이 권력의 폭압과 횡포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해 온 인권변호사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권변호사’라는 개념조차 없던 불모의 시대인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서 민청학련 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 수많은 사건의 변호를 맡았는데, 주로 70, 80년대 시국사건으로서 민청학련 사건, 지학순주교사건, 김지하 반공법위반사건, 3.1구국선언사건, 동아·조선투위사건, 청계피복노조사건, 한승헌필화사건, 동일방직노조사건, 이영희, 백낙청 사건,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 YH사건,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원풍모방사건, 강원대 성조기 방화사건, 오송회 간첩사건, 대우어패럴 사건, 서울미문화원사건, 건국대사건, 부천서 성고문사건, 박종철 사건, 문익환 목사 및 임수경, 문규현 방북사건, 윤석양 사건 등 관계하지 않은 중요 시국 사건이 없을 정도였다.

또 자신을 포함한 제 1세대 인권 변호사들과 암울한 시대인 70년대에서 80년대 후반에 대학생활을 보낸 젊고 진보적인 변호사들이 함께 조직한 ‘민주사회을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결성과정에서도 내부의 이견을 조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실질적인 산파역을 하였다. 그러던 ’93년 지병으로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