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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이후 ’82년 4월 10일 민족통일사상연구소를 설립하여 광주자주화 투쟁 정신과 통일문제의 연결점을 찾는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통일운동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활동에 힘을 쏟았다. ’87년 6월 항쟁 등 민중들의 민주화운동은 자주통일운동으로 승화되어 ’90년대 조국통일운동이 활성화되는 조건을 마련하였다.

김영삼정권은 민간통일운동에 대한 탄압을 통해 분단체제의 기득권과 통치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범민련을 중심으로 조국통일운동을 전개해 나가던 동지는 분단 통치기구인 안기부에 의해 무수한 감시와 위협, 고문에 시달렸다.

’97년 7월 10일 사상 초유의 물난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북동포들의 소식을 접하고 ‘이북 큰물피해 돕기 사업’을 진행하던 중 안기부에 연행되어 간첩으로 날조하려는 고문과 폭행을 당하며 광주교도소에 구속되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직장암을 얻게 되었고 ’98년 11월 26일 직장암 수술이후, 범민련 남측본부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99년 범민족대회 남측본부 추진본부장으로 범민족대회 직후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으나 이에 항의하며 명동성당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하다 건강이 악화돼 ’00년 1월 26일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