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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경원대에 다니던 막내아들 송광영 동지가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학원안정법 철폐하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외치며 분신하여 운명한 뒤 경원대 신문사의 인터뷰에서 “난 민주도 모른다요, 동지가 다 뭐다요, 우리 광영이가 죽으면 무슨 소용 있다요.”라고 말씀해 만인의 가슴을 울린 동지는 서울 기독교병원에서 화마와 싸우면서도 조국의 자주화와 민주화, 통일을 부르짖는 아들 광영과 조국의 어머니로 살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민주화를 위한 여러 투쟁에서 동지는 ‘감동의 황색 가죽가방’으로 불리우며 백골단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91년에는 유가협 부회장직을 수행하며 회원 조직화에 앞장서다 강경대 동지 치사 경관 공판 도중 부당한 공판에 항의하다 법정소란 혐의로 1년 6월동안 수배생활을 하였다.’94년 문익환 목사님의 서거로 충격을 받고 “나 죽으면 광영이랑 문목사님 묻혀 계신 마석모란공원에 묻어주고, 꽃일랑 차라리 종이꽃으로 해줘. 문목사님처럼 많은 통일의 씨앗을 뿌리고 죽어야 하는데, ’95년까지만 사셨어도 이렇게 슬퍼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끼다 결국 심장병으로 운명하여 마석모란공원에 목사님과 함께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