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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94년 2월 1일 “UR재협상, 국회비준거부, 농업대개혁 쟁취를 위한 전국농민대회”참석을 위하여 진양군 농민회 사무실에서 아침 6시 25분경 서울로 출발하는 도중 빙판길에 미끄러져 반대편 언덕 쪽으로 추락하여 김순복 동지는 두개골 파열로 즉사하였으며 손구용 동지는 두개골 파열로 경상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다 저녁 8시 50분경에 운명하였다. 당시 전국농민대회는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국농어민후계자중앙연합회, 농민단체협의회 등 어느 지역 어느 단체 할 것 없이 농민이라면 누구나 한 마음 한뜻으로 모였다.

농민들은 자식보다 소중히 여기는 농사일을 제쳐두고 오직 UR 재협상 쟁취, UR 국회비준 거부를 목표로 모인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아래, 진양군 농민회에서도 서울 대학로를 향해 진주를 떠났고 도중에 함양 근처 국도에서 예기치 않은 참변을 당하였다.UR을 반대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것을 우연한 사고로 받아들일 수 없다. 열사의 죽음은 우연한 것도 사고에 의한 것도 아니다. 열사의 죽음은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에 굴복한 김영삼 정권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