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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28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모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40년 평양 근교의 송산농사학원을 인수, 원장에 취임하였으나, 곧 계우회사건으로 1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8·15광복 때까지 은둔생활을 하였다.

광복이 되자, 평북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이 되었으나 같은 해 11월에 발생한 신의주학생의거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투옥되었다. ’47년 단신으로 월남, 퀘이커교도로서 각 학교·단체에서 성경강론을 하였다. ’56년 「사상계(思想界)」를 통하여 주로 사회비평적인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한국기독교에 할말이 있다’라는 글로 신부 윤효중(尹孝重)과 신랄한 지상논쟁을 펴 큰 화제를 일으켰다.

’70년 「씨 의 소리」를 발간하여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76년의 명동사건, ’79년의 YMCA 위장결혼식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에 회부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80년 「씨 의 소리」가 강제폐간되어 문필생활을 중단하였으며, ’84년에는 민주통일국민회의 고문을 지냈다. ‘폭력에 대한 거부’, ‘권위에 대한 저항’ 등 평생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일·반독재에 앞장섰다. 저서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 「수평선 너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