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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영문학과를 시국사건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1974년에 발표된 긴급조치 1호와 9호 위반으로 1974년과 1976년에 각각 1년씩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후에도 수배자가 되어 도피생활을 하던 중 1977년 창립된 가여농과 관계를 맺고 1979년에 가영농 자료 제1집, FAO의 참여하는 발전을 위한 교육보고서인 ‘장벽을 깨뜨리고’를 번역했다.

전북 농민의 조직화와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전주시로 이사한후 1985년 전북지역 소몰이 시위(완주군, 진안군, 부안군), 1987년 삼양사 수작투쟁에서 고창군 여성농민 조직, 1988년 임실군의 고추 제값받기 투쟁, 1988년 부안군의 수세폐지투쟁과 부안군 하서면 노곡리의 여성농민투쟁에 적극 가담했다. 동지는 여성농민운동이 자주적 여성농민조직으로 가기 위한 전단계 조직인 조활위에 전북 대표로 참여했으며, 전여농위 창립 준비위원장으로 1989년 12월 전국여성농민위원회가 창립될때까지 활동했다.

각 군의 여성농민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강사개발 훈련을 주관했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출간된 여성농민 학습교재 ‘위대한 어머니’의 내용과 편집에서 큰 역할을 했다. 전북 정읍군 태안면 태흥리에서 농촌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샘골 책마을’의 문을 열었다. 동지는 부드러운 미소와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는 성품이었으며, 조용한 목소리지만 재치 있는 말로 사람들을 웃기고 여성농민이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는 표현으로 강의를 했던 동지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으며 지금도 영원히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