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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평소 “나는 조국과 연애하고 조국과 결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의협심이 강해 항상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으로 ’96년 일본의 독도 망언이후 민족의 자존심과 자주권을 지키고자 일본 대사관 항의 방문 시 홀연 대사관 담을 넘어 한국 청년의 기개를 보여 주기도 했다.

동지는 동아리 연합회 회장으로 밤낮없이 뛰어다녔고 ’97년 용인대가 ‘대학종합평가’를 받게 됨에 따라 총학생회 학원자주화 추진위원회 산하 ‘대학종합평가인정제소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학우들의 권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학생회의 요구를 무시하는 학교당국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2월 10일 새벽 4시 30분경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호소하기 위하여 분신을 기도했다. 동지는 병원 이송 중에도 동료 학우들에게 “운동을 열심히 해달라! 괜찮으니 너무 걱정마라!”를 계속적으로 외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뚜렷한 유서나 구호를 남기지는 않았으나 동지의 숭고한 조국사랑, 학원사랑, 민중사랑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