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진.jpg

동지는 서울지역의료보험노조 창립 후 법규부장,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열성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해고되기도 했던 동지는 복직 후에도 사회보험노조 서울본부장을 역임하며 노조활동을 벌였다.

’00년 6월, 박태영 이사장이 부임하여 노동조합에 무쟁의선언을 강요하고 노동조합의 반발을 악용, 공권력투입을 요청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였으며 공단은 비리부패의 거대한 집단먹이사슬로 조직화되었다. 동지는 이러한 노조탄압에 반발하였고 9명의 동지들과 함께 해고칼날에 희생되었다.

부패비리구조의 정점에 있었던 박태영의 이임식을 저지하려 했고, 이 건으로 고발당한 동지는 긴긴 수배생활로 들어갔다.해고된 후 40살 늦깍이로 시작한 동지의 신혼생활은 8개월만에 끝이 났다. 수배생활은 그 흔한 건강검진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고단한 수배생활과 출생도 보지 못한 아이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동지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고통에 지쳐 처음 병원을 찾은 것이 사망하기 바로 한달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