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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의 표본, 진보적 학술운동과 민주적 교수운동의 대부, 민중운동의 한복판에 선 민중의 벗’ 동지는 이렇게 불렸다.

동지의 학문적 관심은 민족적, 민중적 사회과학을 일구는 것이었다. 동지는 민족과 계급이라는 두 개념을 버팀목으로 하여 비판적인 노동·조직·산업사회학을 구축하는 데 힘썼다. 동지는 ’80년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수난은 동지를 조직가·실천가로서 변모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82년 문을 연 개인연구실인 ‘상도연구실’은 산업사회연구회로 성장하며 당시 진보학술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80년대 후반 이후 진보적 교수운동과 학술운동의 큰 틀로 자리잡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학술단체협의회’의 창립과 발전에도 동지의 노고가 컸다.
동지는 전노협·민주노총·사회진보연대·진보네트워크센터·전국민중연대 등의 고문 또는 대표로 일하며 민중운동의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하였다. 동지는 ’80년대 이래 기층 민중운동단체들에 대한 든든한 후원자였다.
동지는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남은 이들에게 부탁하며 먼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