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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4월 결성한 돈암·동소문동 세입자대책위와 강제철거와 조합이 고용한 깡패들과의 계속되는 충돌에도 불구하고, 삶의 자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특히 재개발조합과 건설회사는 계획적인 내부분열공작을 벌여오면서 구속자를 유발시키고, 이를 협상의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세대위가 이를 반대하며 완전한 삶의 자리를 주장하자 대대적인 강제철거를 감행해 오고 있었다. 그러던 ’89년 2월 18일 돈암동 세입자 집에 가옥주가 술에 취한 채 당장 집을 비우라고 소란을 피우자 가옥주가 식칼을 꺼내어 동지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급히 고대 혜화병원으로 옮겼으나 운명하고 말았다. 또한 2월 2일과 15일 철거 때도 몸소 각목을 들고 22개 초소를 밤새워 돌면서 수고한다는 말과 열심히 투쟁하자고 격려하던 동지는 말보다는 행동을, 이기심보다는 희생정신과 헌신적 활동을, 사소한 차이와 대립보다는 단결과 협력을 몸소 실천하였다.

동지는 평소 유달리 유언 비슷한 말들을 많이 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진정한 빈민해방 노동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쳐 투쟁하겠다는 비장한 결의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동지의 죽음은 본질적으로는 독점건설재벌과 정부가 세입자들의 생존권을 무시하고 오직 있는 자들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재개발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강제철거의 무자비한 폭력성과 비도덕성이 적나라하게 보여진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