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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독실한 가톨릭 교인으로서 대학시절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통하여 노동자민중들이 살아가는 처참한 현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안락을 던져버리고 민중을 위해 투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삶을 시작했다. 


학생운동시기 가톨릭 학생회의 중심 간부로서 가톨릭 학생회의 지역과 전국조직 강화와 발전에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자연스럽게 노동운동으로 장을 이전했다. 

최종만 동지는 가톨릭 상담소 활동을 통하여 노동운동을 시작했으며 더욱 노동자답게 투쟁해 나가기 위해 노동현장인 지하철로 들어갔다. 노동현장에서 자신을 더욱 노동자답게 만들면서, 노보 편집위 의장을 맡아 노동조합의 각종 소식들과 현장의 목소리를 전파하면서 조합원들의 단결을 높여나갔다. 그리고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98년 파업으로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비상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헌신적인 활동을 통하여 노동조합을 정상화시켰다. 이 파업투쟁으로 자신이 해고가 되었지만 해고되어 힘들고 어려워하는 다른 동지들을 다독이며 모아나가면서 노동조합의 강화발전과 지역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종만 동지는 노동조합의 주요간부로 활동하면서 속병을 앓았고 2001년 복직이후에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계속 활동했다. 결국 이것이 위암으로 발전하였고 2003년 3월 확인되었다. 이후 최종만 열사는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초연하게 승리에 대한 열정으로 당당하게 임했다. 온 몸에 퍼진 암덩어리로 인한 엄청난 고통에도 동지들을 웃음으로 만나고 동지들의 안위와 활동을 더 많이 걱정하면서 조국의 자주통일과 노동해방의 승리를 이야기하면서 2003년 9월 8일 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