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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5년 서울교대에 입학한 후 수학과 학회와 교내 서클 UNSA, 학보사에서 활동하였고, 학교 측의 학회와 서클의 해체 조치 이후에는 선배를 통해 소개받은 청담교회 대학생부 활동을 병행하였다. 그러나 서울교대는 전두환 정권 시절의 다른 학교보다도 더 악질적인 교육 관료들의 횡포로 인해 학내에 지하 취조실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현실에 맞서기 위해 동지는 부단한 자기 노력을 거듭했다. 어느 날 일기에 적힌 “이 땅 한반도에 사는 신종속국의 모든 백성이여! 패배자가 아니라 승자가 되어 후세에게 떳떳이 자랑할 수 있도록 일어나자. 일어나자. 백두에서 한라까지 힘찬 행진으로 새 아침을 맞이하기 위하여”라는 글과 같이 살아가고자 했다.

동지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가족들에게 미칠 영향으로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죽어 다시 깨어나라. 진정 역사가 원하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힘을 길러 나오라.”는 마지막 글을 남기고 목숨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투쟁을 승화시켰다. 이후 학교 당국은 그런 그의 죽음조차 이성관계에 의한 자살로 왜곡하는 반인륜적인 작태를 서슴없이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