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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가난한 집안 살림으로 검정고시로 영광종합고등학교에 들어갔고 ’83년 서울대 식품공학과에 입학하였다. 교내 ‘황토’라는 써클에서 활동하다 2학년 때 군에 입대해 군복학 후 동지는 ‘우리농촌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89년 동지는 학업을 포기하고 농민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전국농민운동연합 간사로 활동하였다. ’90년 결혼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농민회 운동을 했다. ’90년 영광군 농민회를 만들고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다. ’92년 대규모로 벌어진 쌀 적재투쟁을 영광군에서 주도하면서 농민회의 안착화에 노력하였다. 군수실 점거, 경찰서장 점거농성 등 이땅의 농민들이 진정한 주인으로 그리고 생산자가 대접받는 세상을 위하여 헌신하였다.’93년 전남 도연맹 정책실장을 맡으면서 전국단위 대규모 농민투쟁을 기획하고 정책을 생산하는 등 쉴 틈 없이 전개하였고, 동지는 ’96년 다시 군단위로 돌아와 기초를 다졌다. 이쯤 농민후계자가 되어 논과 밭을 구입했으나, ’97년 2월 25일 영광군농민회 면지회 총회준비모임 후 귀가 중 교통사고로 운명했다. 동지는 이 땅의 농민해방의 불꽃으로 진정한 농민의 벗으로 삶은 살아온 이 땅의 진정한 농민운동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