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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9년 광주대학교 금융학과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을 시작하여, ’95년에는 한총련 투쟁국원으로 활동하면서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광주학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투쟁을 주도하였다. ’97년에는 제5기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악법철폐, 김영삼 정권의 대선자금 공개,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100만 학도 총투표를 통한 총궐기, 한보비리 사건에 대한 책임자 처벌,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규탄 등의 투쟁을 기획하고 주도하였다. ’97년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지명수배를 받아 은신 중, 9월 15일 전남도경 형사기동대의 검거를 피하다가 경찰검거작전 중 광주 소재 아파트 화단 앞에서 운명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전남지방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경장 ○○○는 경사 특진을 위해 동지의 후배 ○○○를 프락치로 고용, 1,500만원 상당의 금액과 향응을 제공하였고, 이에 후배 ○○○는 자신의 집으로 동지를 유인하였다. 또한 ○○○검사는 ○○○의 프락치 활동을 보호하기 위하여 범인은닉죄로 구속하는 등 법원을 기망한 직권남용 행위와, 경비실 부근에 있던 전남경찰청 형사기동대 ○○○은 화단에 떨어진 동지를 발견하고 “여기 있다”고 외치면서 넘어져 있는 동지를 여러 차례 발로 밟고 소지하고 있던 몽둥이로 가격하여 죽였음을 밝혀냈다.
경찰은 이후 목격자를 확인하고서도 사건을 은폐, 축소하기 위해 조사하지 않았고, 또한 동지가 3층까지 내려온 흔적을 발견하고도 허위로 기재, 서류를 조작하였다. 당시의 한총련에 대한 마녀사냥이 동지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