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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69년 평화버스에 입사해 운수노동자로서 첫 발을 내디
뎠다. 그 후 ’85년 버스기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농성에 참가했고, ’90년에는 평택시에 있는 성호여객에 입사해 동료기사들의 억울한 사정과 회사 측의 부당행위를 시정하려고 노동조합 대의원과 노사위원, 상집위원 등으로 적극 활동했다. ’93년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동지가 속한 ‘한솔회’에서 위원장 출마해 3표차이로 떨어졌으나 선전했다. 이후 회사는 위기의식으로 선거대책본부에서 활동하던 11명을 면직하거나 사표를 강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동지는 ’94년 3월 11일 회사 측의 이러한 부당해고와 근로조건에 항의하러 갔다가 회사 전무와 동반 분신하여 결국 운명하였다. 이후 경찰은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회사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가 술에 취하여 감정을 갖고 있던 간부를 상대로 계획적인 방화 살인으로 보도했다. 이에 맞서 인근의 민족민주단체, 노동운동단체들이 ‘최성묵열사 사인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동지의 명예회복,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탄압 중시, 유가족 보상을 요구하며 힘찬 투쟁으로 4월 15일 ‘평택·안성·아산지역 노동조합대표자 연대회의’를 결성하고 5.1 집회를 평택역에서 개최하는 등 지역 민주노조운동의 연대체를 결성하게 됐다. 동지의 분신은 억눌린 평택·안성·아산지역의 민주노조 연대체를 건설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