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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지중학교를 졸업하고 태창 메리야스에 입사한 동지는 가톨릭 노동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억압된 노동자의 삶을 바꾸려 노력했다. ’81년에는 태창 메리야스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되어 전북지역 최초의 민주노조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다 전두환정권의 노조탄압이 포악해지면서 갖은 탄압을 받다가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간부 7명과 해고를 당했다. 이에 맞서 노조탄압 중지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동료들과 함께 단식농성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동지는 해고 후 ’83년 이리 광전자에 입사했으나, 다시 해고를 당했다. 그 당시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로 인해 어디를 가도 취직이 되지 않았다.

동지는 아세아스와니에 다니던 김덕순 동지와 함께 블랙리스트 철폐투쟁을 전개했다. 이후 취직이 되지 않아 동지는 전주 원일택시 운수 노동자로 일을 하게 됐지만,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그만두고 지역을 옮기게 됐다. ’85년 군산 경성고무에 입사됐으나, 다시 해고가 됐다. ’87년 전주 노동자의 집에서 노동사목활동을 시작해 ’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시 전주지역 민주노조 건설을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90년 전북노련 지도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했으나, ’91년 6월 위암수술을 받게 되었고 8개월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92년 3월 11일 노동자의 새 세상을 위해 온몸을 바쳐 살아온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