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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의 초대 교구장으로서 취임하게 된다. 동지는 노동회관을 만들고 가톨릭노동청년회와 가톨릭 농민회를 조직하여 노동자와 농민들이 권리를 스스로 찾을수 있도록 지원했다. 김지하의 구속과 전태일 동지의 분신은 동지로 하여금 사목활동 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71년 원주문화방송의 부정이 드러난 후 민중들의 어려운 삶이 정권의 가공할 부정부패와 부조리에 있음을 지적하며 10월 5일 원주를 중심으로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개최한다. 이러한 운동은 전국 천주교와 종교단체 시민단체에까지 번져 나가게 된다. 동지의 이러한 활동은 당시 박정희정권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74년 7월 6일, 중앙정부 요원에 강제 연행되어 민청학련사건과 관련하여 조사를 받고 구속된다. 이를 계기로 천주교에서는 정의평화와 지주교를 위한 미사가 열린다. 건강 때문에 연금 상태로 풀려난 이후에도 ‘민청학련사건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양심선언 성명서를 발표하며 박정희 정권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동지의 구속이후 사제들을 중심으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만들어져 이후 시국선언 등 독재정권에 맞선 활동들을 하게 된다. 박정희 암살 이후 동지는 군사정권에 대한 투쟁방식을 변화시켜 민중의 삶의 질을 돌보는 사목활동을 하다가 ’93년 72세로 강남성모병원에서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