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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1년 새마을 청소년 경진대회 낙농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축산기술이 뛰어났고, 더불어 사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81년 영농후계자 자금 200만원을 받아 한우 9마리를 구입해 길러서 ’83년 겨울, 한우 29마리로 늘렸다. 그러나 당시 전경환 새마을 운동본부에서 외국소와 쇠고기 수입을 하자, 소 값이 폭락했다. 밀린 사료 값을 갚기 위해 큰 소 팔아 중간 소 키우고, 중소 팔아 송아지로, 나중에는 송아지 숫자를 줄여오다가 급기야는 ’85년 11월에 송아지 14마리를 팔아 밀린 사료 값 500만원을 갚자 송아지 5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

동지는 논밭 한마지기 없는 처지에서 절망감에 빠지게 됐다. 농협 빚 420만원도 갚아야 하고 많은 가족의 생계도 책임져야하는 동지는 영농 후계자가 된 것을 후회했다. 농민의 생산결과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정부의 영농정책에 분개하여 ‘용기! 패기! 사기! 빚! 빚! 420만원’이라는 마지막 글을 남기고 ’86년 3월 10일 음독하여 3일 만에 운명했다. 동지의 죽음은 농촌경제를 말살하는 정책으로 인해 농촌파탄에 대한 정부의 영농정책에 대한 항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