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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79년 청주대를 졸업하고 형의 의류상을 도와주며 부모님을 봉양했다. 사회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동지는 특히 당시 전두환정권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해 비판하는 글과 나름의 민주화 방안 또는 개헌에 관한 글을 써서 각종 신문사나 정당에 보내고 광주학살 전두환에 대한 처단을 주위 사람들에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86년 3월 5일 안양 박달교장에서 예비군 훈련장에서 전두환정권 극찬에 대한 내용의 정신교육에 대해 항의 반박하고 단상에 올라가 벽에 걸린 전두환의 사진액자를 짓밟았다. 당시 참여하고 있던 예비군을 향하여 ‘정권탈취야욕에 불타 광주시민 수천 명을 학살한 전두환을 처단하자’라고 외쳐 많은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동지는 즉시 군에 체포되어 군 수사기관에서 가혹한 폭행 속에 조사를 받았다. 민간인 신분이어서 다시 서울 남부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행방조차 확인 안 되던 상황에서 가족들은 3월 14일 남부경찰서에서 연락을 받고 나서야 동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미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어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3월 16일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