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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96년 조선대에 입학해 과소모임인 지방자치제 연구반 활동을 했고, 이듬해 연구회 분과장으로 활동했다. 동지는 김영삼 정부의 총체적인 부정, 부패, 부도덕, 폭력성에 입각한 반민족 반민중 정권을 응징하기 위해 남총련 주최로 ’97년 3월 20일 오후 2시에 조선대에서 열린 개강선포식에 참가했다. 전경과 학생의 대치 중 녹두대에서 깃발을 들고 있던 동지가 후배에게 깃발을 넘긴 후 맨 앞에서 전경과 대치해 투석전을 전개하던 중, 시커먼 물체에 맞고 주춤거리며 뒤로 몇 발자국을 물러서다가 미끄러지듯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운명했다.

그러나 사망원인에 대해 병원과 경찰 측은 심장쇼크로 인한 사망으로 발표했고 동지의 시신은 2개월 여간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채 영안실에 보관되었다. 이후 한총련은 ‘시위도중 사망 시인할 것. 몸에 칼을 대지 않는다는 전제로 모든 사인진상 규명을 위해 나설 것. 도청 노제를 비롯한 모든 장례행렬을 보장할 것. 검문, 원천봉쇄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투쟁을 계속 전개했고 경찰 측은 시신에 대한 부검 없이는 장례식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장례식을 방해했다. 결국 동지는 사망한 지 64일 만에 부모, 친지, 조선대 학우 7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