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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동지는 어린 시절 일제말기 학병으로 끌려갈 위기에서 산으로 도피, 일제의 만행에 대응할 정도로 그때부터 특유의 저항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선지자의 철저한 고독 속에 살다간 부산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며 야당통합의 주역으로 활동한 동지는 대학시절 한국기독학생총연맹에서 활동하면서 서서히 사회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고 YMCA총무로 피선됐다. 그러나 당시 강한 보수성을 띄고 있던 YMCA는 목사에게 한계를 느끼게 했고, 이에 중보교회에 들어가 46세의 나이에 목사가 됐다. 그리하여 중부교회를 통해 부산민주화운동을 더욱 확대해 나갔고, ’80년에는 부산민주시민협의회를 결성하여 6·10항쟁을 이끌어내는 선두주자의 역할을 했다. 그 이후 동지는 우리 사회에서 자활의 기회를 박탈당한 장애인에게 동등한 한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위한 운동의 저변확대를 위해 한울장애인 자활센터를 건립하고, 한울 장애인 어린이집을 개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92년 지병으로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