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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은 한마디로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정부가 동지에게 지급한 돈은 30만5000원에 불과했다.(’02년 기준) 이 돈은 동지의 한달 생활비를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오히려 빚을 져야하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지는 청계천 벼룩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수술을 받기 위해 노점을 좁기도 했는데 1인당 월 소득이 33만원이 넘으면 수급권자가 될 수 없으며 의료보호 또한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현행 최저생계비에 기초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그리고 최저생계 보장이라는 법의 취지에 위배된다. ” 며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그러던 중 동지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4년 전 남편과 이혼한 동지에게 9살 난 아이가 한명 있었다. 동지는 양육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통장에 어느 정도의 돈을 넣어두어야 한다는 조언을 변호사로부터 들었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통장에 7백만 원 가량의 돈을 모았다. 동지는 통장의 돈 때문에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수급권자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것은 동지에게 양육과 수급권 중 한 가지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장애인으로, 여성으로, 수급권자로 그리고 실업자로 살아야했던 동지는 어떻게 호소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아이의 양육권과 쥐꼬리만한 수급권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극약을 마시고 병원에 입원 중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