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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부산대학교에 입학해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활동했다. 3학년을 마친 후 휴학을 하고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중에도 동지의 운동에 대한 신념은 끊이지 않았고 조직과 동지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운동에 복무했다. 그러던 중 동지의 실수로 민족민주운동의 중요 문건과 책자가 든 가방이 보안대에 넘겨진 사실을 알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을 동지들과 조직을 자신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막을 결심을 했다.

동지는 ‘본인의 중대한 과오로 인해 조직을 보위 코저, 나의 육체적 생명을 단절합니다. 우리의 혁명과 투쟁이 너무나 순결하고 숭고한 것이기에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나의 생명이 다할지라도 혁명을 향한 민중들의 투쟁은 더욱더 가열 차게 격렬해질 것입니다… 이제 저는 가야할 때가 왔습니다. 적들의 야수 같은 손길이 나를 찾고 있습니다. 나의 죽음이 우리 혁명과 조국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면 조금이나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요.’ 라는 내용의 유서를 부산대 총학생회로 보내고 자결하여 ’87년 3월 27일 야산에서 등산객에 의해 주검으로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