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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4월 28일 아침 9시30분 서울 관악구 신림동 4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에서 서울대 총학생회 주관으로 400여명의 서울대학교 2학년 학생들이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가두투쟁을 전개하였다. 반전반핵 투쟁위원장 이재호, 자연대 학생회장이던 동지는 전방입소 거부투쟁을 지도하던 중 예식장 옆 3층 건물 옥상에서 온몸에 신나를 뿌리며 강제진압하려는 폭력경찰에 경고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폭력경찰의 강제진압에 맞서, 두 동지는 분신으로써 항거하였다. 시뻘건 불속에서 “양키고홈”을 외치던 두 동지는 추락하여 10분간이나 방치되었다. 동지는 전신 60%의 3도 화상을 입었다. 동지는 5월 3일, 이재호 동지는 5월 26일 운명하였다. 이 투쟁을 계기로 반미구국투쟁은 급속히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한국의 운동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