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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1년 8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배관공으로 입사한 후 ’86년 8월부터 어용노조 퇴진 및 위원장 직선제 쟁취를 위해 노조 개혁과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동지는 ’90년 7월 노조위원장 선거에 당선되었고, 부산노련 부의장 겸 전노협 중앙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91년 2월 10일 제3자 개입금지위반으로 구속되었고, 수감중 부상을 입고 안양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5월 6일 새벽 4시 45분 안양병원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정에서 그러나 사망 직전 옥상에 함께 올라간 동행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동지와 한진중공업 노조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전노협, 대기업연대회의 탈퇴 및 와해 활동이 안기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이 조사과정에서 밝혀졌으나, 국정원의 자료공개 비협조와 은폐로 아직 진상규명이 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