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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어려서부터 중국집 배달원, 가방공장 공원 등의 노동일을 하였다. ’89년초 대학출신 현장 활동가를 만나면서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해 인식하게 된 동지는, 서울 민주화직장청년연합의 풍물강습반에 등록해 활동하기에 이른다.
동지는 평소에 망월동 참배를 원했으며, ’91년 5월에는 5월 9일 국민대회에 맞춰 광주로 갔고, 5월 9일 분신해서 투병 중이던 박승희 동지에게 문병을 가기도 했다.

’91년 5월 10일 동지는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한점 불꽃으로 산화하였다.
분신 이틀 후인 12일, 동지는 “노동해방을 위해 분신을 생각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