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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에 입학해 동아리 ‘청문회’에서 활동하며 사회민주화와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던 동지는 ’86년 5·3 인천투쟁에 참가해 실형 1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 후 노동자와 삶을 함께 하고자 ’88년 7월 덕진양행에 입사했다. 동지는 동료들과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11월 29일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선출되어 회사 측과 교섭에 들어갔다.

1월 중순 사측은‘공장이전이라는 노조 탄압을 휘두름으로써 민주노조의 생명을 끊어놓으려 하였다. 이에 덕진노조는 동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경비절감 한다더니 땅값 비싼 서울이전이냐. 서울이전 철회하라!” 외치며 2월 16일부터 파업농성에 돌입하였다. 마지막 농성마저도 또다시 협상이 결렬되자 이에 격분한 동지는 공장 이전 철회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신나를 끼얹고 항의 도중, 온몸에 펑하고 불이 붙어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