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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워내기 위한 선생님의 꿈을 안고 서울교대에 입학했다. ’89년 3월 서울교대는 ‘기성회비 사용내용 공개, 예·결산시 학생 대표 참여’를 요구하며 학원민주화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삭발과 단식, 수업거부 투쟁 등이 교수들의 연구실 수업 등으로 부분적 수업거부에 그치게 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동지는 4월 7일 오후 7시경, 강의동 3층에서 반미 출정가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 부르고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미제와 독재의 가슴을 찔러 총” 구호를 외치며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교대인이여 깨어나라!’라는 혈서로 쓴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