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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서울대 농대에 합격하여 대학생활 중 이념써클 ‘한얼’에 가입하여 문학과, 사회사상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많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등 사회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갖고 실천하게 된다. ’75년 4월 서울대는 학원자율화 문제와 동아일보의 언론자유 문제로 인해 학생총회와 시위가 벌어지고, 자유성토대회 3번째 연사로 등장한 김상진 동지가 양심선언문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몇 차례의 박수가 터져 나왔고 끝부분의 ‘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다음, 원문과는 달리 ‘나의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서 여러분은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완전한 이성을 되찾아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갖다가 명실상부하게…’에 이르러 20cm가량의 과도를 품안에서 끄집어내어 할복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