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열사들이 그토록 바랬던 내일입니다.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열사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그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 숨쉬고 있습니다.
동지는 이미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사회과학서적들을 탐독하여 기초적인 사회인식이 되어 있었고, ’85년 3월 한신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 후 재학 중 반독재 민주화운동, 노동자 권익을 위한 민중운동을 지향하는 언더 써클에 가입하여 각종 시위 등에 참가하였다. ’89년 5월 20일 수원지검 점거농성으로 인해 징역 1년 6월의 형을 선고받고, 출감 후 ’91년 2월 19일 군 입대 영장의 수취를 거부하고(’92년에도 입영거부), 소규모 영세사업장에 다시 위장취업을 하였으나 신분 제약으로 인해 노조 설립 등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고 병역기피와 비합법 조직운동으로 공안기관의 미행, 감시를 심하게 받게 되었다. 공안기관에 의해 추적당하던 중 ’92년 8월 29일 부천시 수영기계에서 퇴근한 후 행방불명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정에서 동지는 ’92년 8월 29일 당시 시흥역내 열차사고 사망자의 지문과 동일인으로 확인되었고 동지의 시신은 신원불명의 변사자로 분류되어 가매장된 후 용미리 무연고자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가 ’02년 마석모란공원민주열사묘역으로 다시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