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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경희대에 입학하여 ’87년 2월부터 8월까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청년회 전국연합회 서울동부지역 노회 총무로 활동하며 ‘양심수 석방’, ‘군부독재 타도’, ‘민중생존권 보장’ 등을 주장하며 삭발 단식 투쟁을 벌이는 등 사회민주화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두란노야학’(해뜰야학)에서 ’87년 1년 동안 노동자 고입검정고시를 위해 교육을 담당하면서 야학 교무 일을 맡아 보았다. ’88년에도 계속적으로 야학 월례회의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참여했다.

그러던 ’89년 3월 26일 야학 동료들과의 모임에서 술을 마신 후 서울 중랑구 면목동 길가에서 의식불명인 채 발견됐다. 그리고 같은 달 31일 병원에서 연수마비 및 뇌좌상으로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장종훈 동지가 길을 가던 중 대형차량에 의해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이라 판단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당시 활동에 있어 경찰의 감시와 미행이 있었고, 동지가 수배 받은 사실이 있음으로 죽음에 의혹이 있다고 제기했다.

 이후 의문사위원회에서 조사했음에도 유가족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 사실로 밝혀진 부분은 없었다. 그리고 의문사위원회는 동지가 야학 관련 모임을 끝낸 후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이후 먼저 나와 귀가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