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열사들이 그토록 바랬던 내일입니다.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열사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그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 숨쉬고 있습니다.
출생 | 1971년~1991년 (당시 2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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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일 | 1991-05-03 |
약력 | 1971년 5월 서울 출생 1990년 서울 동북고 졸업 경원대학교 전산과(2부) 입학 1990년 3월 경원대힉교 민족사 연구회 ‘한얼’에서 활동 1991년 5월 3일 오후 3시경 ‘강경대 학우 폭력 살인자행한 노태우 정권 타도를 위한 결의대회’도중 분신 후 투신하여 운명 |
요약 | ‘강경대학우 폭력살인 자행한 노태우 정권 타도를 위한 결의대회’ 도중 분신,투신 |
묘역 |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53family |
동지는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인해 낮에는 일용직 건설노동자, 세차장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고 밤에는 야간강좌를 들으면서도 누구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당시 동지는 강경대 치사사건과 박승희, 김영균 동지의 분신으로 전국적으로 규탄집회가 잇따르는 가운데서도 경원대 학생들이 축제와 체전 분위기에 들떠 집회에 참석하는 수가 점차 줄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동지는 이같이 어려운 학교 상황에서 학생들을 깨우쳐 일으킬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게 되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결론을 내렸다. ’91년 5월 3일, 동지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4만 학도 결의대회’가 시작되자 국기 게양대 난간에서 신나를 뿌리고 몸에 라이터를 갖다댄 뒤 “6천 경원대 단결 투쟁 노태우정권 타도하자”고 외치며 6m아래 바닥으로 뛰어내렸고 끝없는 민중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산화해갔다.